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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원론 임파워먼트 릴리스(보도) 자료

2020. 8. 23. 23:16 | Posted by 책달구지

 

품목 정보

책 제목: 일원론 임파워먼트 [부제: 비베카난다 잠언집 힌두 사상편]

저자: 스와미 비베카난다

출판사: 책달구지

출간일: 2020.9.1

분야: 동양 철학

제본: 무선

쪽수: 208p

크기: 신국판

ISBN: 979-11-967845-6-0

정가: 13,000

 

 

 

책 소개

아드바이타 베단타 학파의 유명 학승 스와미 비베카난다가 전해주는 힌두 철학의 정수를 그의 전집에서 발췌, 중요한 잠언들을 모았다. 일원론을 비롯, 13개의 힌두이즘 소주제로 구성되어 있으며 더불어 저자의 시 10편을 선정, 수록했다.

힌두 철학은 인도의 신화만큼이나 역사가 장구하고 다양한 사상들이 혼재되어 있다. 인도 철학의 원류 경전들은 문자 발명 이전에 탄생, 구전으로 내려오던 것들이었다. 다양한 학파와 막대한 양의 힌두 철학 전부를 살펴보기에 어려운 사람들에게 권하는 것이, 바로, 비베카난다가 선정한 핵심 힌두 사상이다.

비베카난다는 다른 여느 힌두 종교인들과 다르게 신비적이지 않다. 매우 과학적으로 주장을 전개한다. 그리고 자신이 경험, 체화한 것을 전달하지, 옛 문헌에 나온 것을 맹목적으로 믿고 전하지 않는다. 힌두 전통 사상 중에서도 가치 있는 것만을, 참인 것만을 걸러서 알려 준다.

힌두 전통 경전들은 학파, 종파마다 다르게, 심지어는 자기 입맛에 맞추어 해석되는 가운데, 비베카난다는 일원론의 관점으로 힌두 주요 사상을 설명한다. 힌두 사상은 일원론 학파(아드바이타 베단타)를 만들 정도로 일원론을 강하게 종교와 철학 사유 체계에 입힌다. 두 가지가 아니라는 불이(不二), 이 일원론은 마야(Maya, 망상)를 제거하는 데에 효과적으로, 참 진리를 파악하는 데에 필수 메커니즘으로 인도 최고의 사상가들이 크게 발전 시켜 주었다.

한편, 일원론 종교철학이 인도에서 매우 발달했지만, 이원적인 종교 마인드는 여전하다. 모든 것이 진보의 길 위에 있다면서, 비베카난다는 이원적인 종교 마인드를 무시하지 않고, 일원론으로 향하는 발달 단계임을 알려주고는 수용하는 방법을 가르친다. 그리고 그런 이원론의 단계에 있는 종교인들을 위한 수행법(Yoga)도 알려 준다.

 

 

저자 소개

스와미 비베카난다 (1863~1902) 자기완성과 봉사. 이 두 단어로 그를 설명할 수 있겠다. 혹자는 인도의 영적 지도자로 부르기도 하지만, 비베카난다는 그런 위치를 원하지 않았다. 그의 가르침에 따르면 비베카난다 자신이 바로 모든 이들의 하인이다. 하인으로서 세상을 섬기고 싶어 했고 심지어는 개인의 해탈을 거부하였다. 윤회하여 자신을 사회 발전에 쓰고 싶었기 때문이다. 출가와 수행을 돕기 위해 승원을 설립하였으나 자신의 이름이 아닌, 스승의 이름을 따 설립하였다. 그의 책은 세계 많은 나라에서 읽히고 있으며 인도의 스승을 넘어 세계인의 스승이 되어 있다. 살아생전 미국과 유럽에서 강연을 많이 하였기에 이미 유명인사였다. 병약한 몸으로 인해 일찍 영면하였지만 그의 놀라운 통찰은 사람들의 뇌리에 언제나 진동하고 있다. 인도 사상을 동서양에 빛내고 사람들의 정신을 고양한 업적으로 인도 정부는 비베카난다의 생일을 공휴일로 지정, 그의 가르침과 공훈을 기린다.

 

 

목차

역자 서문 /

1. 두 가지가 아니라는 불이(不二, ADVAITA) /

2. 하나의 신이 모든 존재에 거한다 /

3. 초연결(超連結)의 아트만(ATMAN) /

4. () 브라흐만(BRAHMAN)/

5. 마야(MAYA) /

6. (KARMAN)과 인과율 /

7. 힌두 수행의 길 하나 되는 요가 /

8. 바가바드 기타와 카르마 요가 /

9. 베다(VEDA)와 우파니샤드(UPANISHADS) /

10. 베단티즘(VEDANTISM) /

11. 힌두 사상의 특징 /

12. 인도의 정신 /

13. 불교(BUDDHISM), 그리스도교(CHRISTIANTY /

[부록] 비베카난다의 10

 

 

책 속으로

* 누가 과연 집착하지 않고 행위를 할 수 있을까? 이게 진짜 질문이다.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은 행위의 결과로서의 성공과 실패를 동일한 것으로 본다. 생애 전부를 걸어 한 행동이 순간적으로 한 줌의 재가 되더라도 가슴이 뒤틀리게 박동하지 않는다. 결과를 신경 쓰지 않고 언제나 행위를 그 자체로 하는 사람들이 바로 성인(聖人)이다. 게다가 그들은 삶과 죽음의 고통을 넘어서서 자유롭다. 성인들은 모든 집착이 망상임을 안다. 아트만(Atman, 참나)은 결코 집착할 수 없기 때문이다.(1. 두 가지가 아니라는 불이)

* 신이 없는 곳이 없음을 알고서 현인(賢人)들은 칭찬과 비난을 여읜다.(2. 하나의 신이 모든 존재에 거한다.)

* 선과 악은 더 구현되고 덜 구현된 정도의 문제일 뿐이다. 우리 삶을 예로 들어보자. 우리가 아이였을 때 선으로 생각된 것이 얼마나 많았는가? 그러나 사실은 악이었다. 그리고 선을 악으로 얼마나 많이 여겼는가? 이렇게 생각은 얼마나 잘 변하는가! 생각들은 얼마나 잘 올라가는지! 한때 매우 좋다고 생각되었던 것이 지금은 얼마나 나빠졌는가! 그러므로 선과 악은 잘못된 믿음일 뿐 실재하지 않는다. 오직 정도의 차이일 뿐이다. 이 세상의 전부가 아트만(Atman, 참나)의 구현이다. 모든 것에 아트만이 표현되어 있다. 자기애(ego)가 매우 두터우면 우리는 그것을 악이라고 부르고 매우 얇으면 우리는 그것을 선이라고 부른다. (3. 초연결의 아트만)

* 브라흐만(Brahman, 우주 원리)을 아는 자는 자신의 행복을 절대 추구하지 않는다. 그런 자가 타인의 안녕을 위해 행동하는 것을 무엇이 막을쏘냐? 모든 무착(無着)의 행동은 세상에 이익을, 많은 이들에게 행복과 이익을 가져다준다. 라마크리슈나 파라마한사 스승은 일찍이 말했었다. ‘그런 사람은 절대 잘못된 행보를 하지 않는다.’ (4. 공 브라흐만)

* 절대 천국에 가려고 하지 말라. 그것은 최악의 망상이다. (5. 마야)

* 어떤 바보가 세상의 책 전부를 살 수도 있겠고, 그 책들은 그 바보의 도서관에 있게 되겠지. 그러나 그 사람은 얻을 수 있는 만큼만 읽어 취할 수 있다. 그 얻을 수 있는 만큼은 카르마(Karma, 업보)에 의해 나온 것이다. (6. 업과 인과율)

* 완벽한 박티 요가 수행자는 사원이나 교회에 있는 신을 더는 보러 가지 않는다. 신을 찾을 수 없는 어떠한 곳도 없음을 알기 때문이다. 사원 안이나 밖에서나 신을 만난다. 그는 성인의 신성함에서, 사악한 자의 사악성 속에서도 신을 발견한다. 왜냐면 신은 이미 영광스럽게도 사람의 심장 안에 이미 거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능하고 꺼지지 않는 사랑의 불빛으로서, 언제나 빛나고 영원히 함께하는 신으로서. (7. 힌두 수행의 길 - 하나 되는 요가)

* 누가 도움을 받을 것이며 무엇 때문인지 등을 개의치 않는, 무착(無着)으로 행위하는 방법을 카르마 요가 수행은 가르친다. 카르마 요가 수행자들은 그것이 자신들의 본성이기에, 그렇게 하면 상대에게 좋다고 느끼기에, 더 이상의 목적을 가지지 않고 행위 한다. 이 세상에서 자신의 포지션은 주는 사람이지 어떠한 것도 받을 것을 신경 쓰지 않는다. 주기만 할 뿐 되돌아오는 어떠한 것도 요구하지 않는 자신을 알고 있기에 비극을 피한다. (8. 바가바드 기타)

* 우리의 목표는 행복도, 불행도 아니라고 우파니샤드는 지적한다. 그러나 행불행을 만들어내지 않는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 말하자면 우리는 뿌리에서부터 그런 입장의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 (9. 베다와 우파니샤드)

* 신은 순수하고 완벽하다며 선과 악을 넘어선 상태가 있는데, 그것이 본연의 모습이라고 베단타 철학은 말한다. 이는 좋은 것보다 더 상위의 것이다. 좋은 것은 안 좋은 것과 약간 밖에 차이가 안 난다. 베단타 철학은 악()에 관한 이론을 가지고 있지 않은데, 단지 무지(無知)라 부를 따름이다. (10. 베단티즘)

* 사랑에 대한 가르침에는 기독교와 힌두 간에 차이가 있다. 기독교는 우리를 사랑해 주길 바라는 만큼 이웃을 사랑하라고 가르친다. 힌두교는 이웃을 우리 자신으로 여기고는 사랑하라고 한다. 실은 우리 자신을 이웃들 안에서 보는 것이다. (11. 힌두 사상의 특징)

* 힌두 종교는 특정 교조, 교리를 믿으려 하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 믿음이 아닌 깨달음 때문이다. 믿음이 아닌 존재와 생성에 힌두 종교가 있다. 게다가 힌두 종교의 모든 목적은 끊임없는 분투를 통해 완벽히 되기, 신성화(神聖化) 되기, 신에 도달하기, 신을 보기이다. 신에 도달하면서 천국의 신처럼 완벽하게 되는 것이 힌두 종교의 내용이다. (12. 인도의 정신)

* 우리의 모토는 배척이 아닌 수용이 될 것이다. 소위 말해, 관용은 종종 모독이기에 나는 관용을 믿지 않는다. 나는 수용을 믿는다. 왜 내가 참아야 하는가? 관용은 당신은 옳지 않고 나는 당신이 그렇게 사는 것을 그냥 허용할 뿐이다.’는 의미로 나는 생각한다. 타인을 그렇게 살도록 허락한다는 게 독설이 아니라고 생각하는가? 나는 과거에 존재했었던 모든 종교를 수용하며 모든 종교를 숭배한다. 종교의 형태가 어떻든 그 종교들이 경배하는 신과 모든 종교를 나는 숭배한다. 나는 무슬림의 모스크로 갈 것이며 난 크리스천의 교회에 들어가 십자가 앞에서 무릎을 꿇을 것이다. 나는 부처님의 말씀에 귀의, 불교 절에 들어갈 것이다. 나는 모든 이의 마음에 깨달음의 빛을 보려 하는 힌두인들과 숲에 들어가 명상을 할 것이다. (13. 불교, 그리스도교)

* 최고의 브라흐만에서부터 미약한 벌레까지

그리고 매우 작은 원자까지도

모든 것에 똑같은 신이 있다. 모든 것이 사랑인

친구여, 그들의 발아래에 마음, 영혼, 몸을 바쳐라

이런 것들은 신의 다양한 형태들이다

그들을 거부하고 어디서 신을 찾는가?

분별 말고 모든 존재를 사랑하라

그런 사람이 진정 자신의 신을 가장 잘 경배하고 있다

(부록-비베카난다의 시 '친구에게)

 

 

출판사 서평

 

I’m OK, You’re OK.

- 관용이 최고 아니었나? 비베카난다는 관용을 낮을 레벨이라고 치부한다. 일원론적 조화는 참다라는 뜻의 관용(Tolerance)이 아닌 수용이었다. 힌두교의 수용성을 가르쳐주면서 우리의 기존 그릇을 확장해주는 책이다. 일원론적 사유와 연결된 수용의 그릇은 이원론적 접근의 관용에 비해 심오하기 그지없다. 그래서 비베카난다에게 있어 관용은 미덕이 아니다. 왜 참아야 하냐고 묻는다. 수용하면 참지 않을 텐데.

- 힌두교를 무신론으로 결론 내리고 있는 역자의 서문도 꽤 신선하다. 비베카난다의 신관(神觀)을 종합 분석했을 때 아드바이타(Advaita, 일원론) 베단타 학파의 범신론은 유신론이 아니라고 한다. 무신론인 범신론? 범신론 자체 신이 있다는 전제를 하는데 어떻게 무신론이 될 수 있을까?

- 비베카난다가 가지고 있는 신 개념은 일반적인 신과 많이 다르다. 아드바이타 베단타 학파의 범아일여(梵我一如) 또는 신인일체(神人一體) 사상에 따른 신 관념은 신이 없어도 될 정도로 인간적이다. 신과 무관한 깨달음을 종교의 정의로 비베카난다가 취한 만큼 그에게 있어서 신은 일반적인 인격적 존재가 아니고, 이상적(理想的)인 인간, 본래 내재한 신성(神聖)이 되었다. 그래서 무신론이 되었다.

-사실, 처음부터 힌두 범신론이 무신론이었던 것은 아니다. 이원론이었던 베단타 철학이 점점 발달, 아드바이타(일원론) 학파에 와서 유신론이 무신론으로 뒤집어졌다. 아드바이타 학파는 힌두 종교계에서 한 부분이지만, 9세기에 발생한 이 이념은 학계에서 가장 발달한 사조로 통념 되고 있다. 신의 눈에서 인간의 눈으로 바라보는 관점의 전환이 유럽 근현대 인식론의 전환이었다면 아드바이타(일원론) 학파의 범신론(汎神論)은 범아론(汎我論)이 된 재미난 사건이다. 아드바이타 베단타 학파 훨씬 이 전부터 우파니샤드에 일원적 종교철학이 이미 기술되어 있었던 터, 인도는 고대부터 일원 종교 및 무신론(불교, 자인교, 아드바이타 베단타 힌두교)의 지역이었다.

-브라흐만(Brahman, 우주 절대 원리)이 투영된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나의 다른 버전(version)으로서, 타인이 나이고, 신이 나라는 존재론적 전환이다. 일원론이 그러한 전환을 끌어냈다. 근현대 유럽의 신인(神人) 전환은 신, 인 분별의 이원론에 의거한 것이고, 힌두교의 신인 전환은 일원론에 의거한 것이다. , 인 가르지 않고 동일화해서 신으로 상정한 모든 것에 인간을 대입해도 상관없는 일원론이다